2021-07-06 21:15:49
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조심하여 웃지 말라. 웃을 때 사람은 결점을 드러내기 쉽다’는 명구를 남겼다. 자연스러운 환환 웃음을 지으라는 조언이었다. 이미지 출처=픽사베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화창한 웃음을 웃어본 지 꽤 오래된 듯하다. 경기가 나빠진 탓도 있고 그놈의 마스크 때문에 웃어도 자신이든 남이든 제대로 웃었는지 알아챌 수가 없다.
내가 울적해 있으면 항상 나더러 거울을 좀 보고 ‘뒤센 미소’를 지어보라고 다독거리는 사람이 있다. “그게 말처럼 쉬운가요?”, “웃을 일이 있어요?”, “예 알았습니다. 노력해보죠”가 퉁명스런 기자의 답변이다. 그는 기자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애쓰는 사람 중 하나다.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 1934년생)은 연구를 통해 인간은 얼굴 근육 42개를 조합해 모두 19가지 미소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중 하나만 진짜 웃음이고 나머지 18개는 모두 가짜 웃음이라고 규정했다.
인간이 웃을 때에는 광대뼈와 입술 가장자리를 연결하는 대협골근과 소협골근(musculus zygomaticus major, musculus zygomaticus minor, 협골(頬骨)은 광대뼈)과 입술 둘레의 구륜근(口輪筋, orbicularis oris muscle)을 주로 사용하지만 진짜 웃음은 다른 근육과 함께 눈 가장자리 근육인 안륜근(眼輪筋, orbicularis oculi muscle)을 써야 한다.
이 같은 사실은 19세기 중반에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벤자민 아만드 뒤센(Guillaume-Benjamin-Amand Duchenne, G.B.A Duchenne 1806~1875)이 밝혀냈다. 에크만은 뒤센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가식 없이 활짝 웃는 웃음을 ‘뒤센 미소’(Duchenne smile)라고 명명했다.
협골근은 입가를 들어올리는 데 그치고, 구륜근은 입을 다물거나 뾰족하게 한다. 반면 안륜근은 눈 주위에 까치발을 세운 것처럼 뺨을 들어올린다. 그러고보니 주위에서 뒤센 미소를 자연스럽게 짓는 사람들은 눈가 주름이 많은 듯하다.
뒤센은 안륜근이 움직이는 눈으로 웃는 웃음을 ‘smizing’이라고 따로 불렀다. 반면 지나치게 과장된 뒤센 미소는 거짓말과 관련 있다는 규정지었다.
참고로 안면근은 피근(표정근)과 저작근으로 대별되며 표정근은 두개표(頭蓋表)·구부, 비부, 이부, 안부 등 4개군으로 배열되는 총 20종의 근육을 갖고 있다. 모두 수의근(隨意筋)이지만 안륜근은 의도적으로 움직이기가 매우 어려워 사실상 불수의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희귀 유전성 근육질환인 뒤센근이영양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도 1868년 뒤센이 이를 의학적으로 처음 기술했다. 그런데 많은 국내 기사들이 1968년이라고 오기하고 있다. 근래에 치료법이 발전돼 20세기에 명명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100년 전에 이미 뒤센근이영양증의 전형적인 증상과 발병 양상을 뒤센이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말로 미소(微笑)는 소리없이 잔잔히 웃는다는 뜻이므로 ‘뒤센 미소’는 어쩌면 ‘뒤센 대소(大笑)’나 그냥 영어 그대로 ‘뒤센 스마일’이 맞을 법하다. 대소는 긍정적으로 보면 크게 웃는다고 볼 수 있지만 은연 중에 누구를 경멸하거나 비웃어 크게 웃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고 있어 뒤센 대소도 그리 적절한 작명은 못 될 듯하다.
자고로 우리 윗세대는 점잖고 품위 있는 미소를 지으라고 가르쳤다. 환하게 자연스럽게 웃자는 바람이 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뒤센 미소는 마음 먹는다고 해서 움직여지지 않는 안륜근이 개입돼야 나오는 진짜 웃음이어서 그동안 우리 조상들이 권장한 미소는 형식적이고 진심이 안 담긴 웃음일지도 모르겠다.
뒤센 미소는 예의를 차리는 미소가 아니라 얼굴 전체를 밝히며 진정한 기쁨을
드러내는 미소다. 뒤센 미소의 상대어가 ‘팬암 미소’다. 미국의 팬아메리칸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 승무원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던 인위적 미소를 말한다. 모두 하나 같이 획일적인 미소를 지었는데 안륜근이 움직이지 않은 가짜 미소였다.
‘보톡스 스마일’이란 것도 있다. 눈가주름이 잡히지 말라고 보톡스를 자주 주사하면 눈 주변의 근육이 마비돼 뒤센 미소를 방해할 수 있다. 이목구비가 상응하지 않으니 어색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밖에 입술을 닫고 짓는 미소(The closed-lip smile)는 의뭉하고도 즐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고개를 살짝 돌리며 웃는 미소(The turn-away smile)는 애교를 부릴 때 짓는다. 억지로 웃는 미소(The forced smile)는 가짜 미소이거나 상대가 잘 되길 바라지 않는 미소일 수 있다.
요즘 기업체에서 인공지능(AI)이 채용 시험 때 면접관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AI가 사람이 보지 못한 면을 보고 객관적이라는 호평도 있지만 일부 부정적 특징을 기계적으로 또는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특정 성(性)이나 직군에 불이익을 주는 오류를 일으킨다고도 한다.
AI는 결국 수많은 표정과 웃음 사진을 보고 머신러닝을 통해 자율학습을 통해 사람의 내면을 판정하는 감정이 없는 기계라서 예컨대 면접자가 입꼬리를 습관적으로 한쪽으로만 올리면 AI가 ‘경멸’로 인식할 수 있다. 얼굴을 조금만 찡그려도 ‘짜증’을 잘 내는 사람으로 찍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꼬리가 동시에 올라가지 않고 한쪽만 올라간 웃음(The lop-sided smile)은 상대를 슬쩍 비웃거나 경계심을 가졌다는 자신의 내면을 노출시킨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뒤센 미소는 활짝 웃는 눈웃음과도 같다. 뒤센 미소를 짓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살며 결혼 생활에서 만족도도 높고 이혼율도 낮았다고 한다. 평균 소득 역시 뒤센 미소를 짓는 사람이 더 높았다. 뒤센 미소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호감을 불러오고 대화에서 주도권을 쥐게 한다. 뒤센 미소는 곧 행복, 사랑, 성공에 다가가는 길이라는 의미다.
웃음이 행복과 부를 부르니 자본을 들이지 않고 뒤센 미소를 짓는 훈련(투자)을 해보자. 책이랑 인터넷 여기저기에 뒤센 미소 짓는 법이 나와 있으니 따라해볼 만하다. 기자도 해봤는데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내 마음이 스스로 행복하면 사실 무슨 훈련이 필요하겠나 싶다. 저절로 뒤센 미소가 지어질 텐데 말이다.
웃음에 대한 격언 또는 명구를 훑어보니 ‘웃음은 목적이 아니고 부산물이다’ ‘웃음이 겸손할 때, 그것이 자만심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에는 눈물보다 슬기롭다’, ‘웃음을 포함하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조심하여 웃지 말라. 웃을 때 사람은 결점을 드러내기 쉽다’ 등이 나온다. 뒤센 미소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니 다 일리가 있는 구절들이다.
2005년 미국 뉴저지주 주립 럿거스대에서 심리 실험을 한 결과 여러 선물 중 꽃을 받은 사람들 모두 ‘진정한 미소’를 지었고 좋은 기분이 더 오래 가 다른 선물을 압도했다. 햇빛을 적당히 즐기면서 정원을 가꾸며 예쁜 꽃을 키울 수 있는 마음과 여건이 된다면 스트레스는 절로 날아가고 사랑, 행복과 함께 뒤센 미소가 넘실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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