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매력에 향기를 더하고 싶다면, 향수 A to Z
2020-04-02 11:46:42
3~5시간 지속되는 오드트왈렛 가장 대중적 … 시차에 따라 탑·미들·베이스 노트로 변화되는 조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 냄새를 맡고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주인공은 “마들렌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감미로운 쾌감이 나를 사로잡았다”고 표현한다.
냄새가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지배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후각은 오감 중에서 유일하게 대뇌변연계로 바로 전달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청각이나 시각 등이 대뇌 측두엽을 거쳐 대뇌변연계까지 전달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대뇌변연계는 본능적인 행동이나 정보를 담당하는 부위로 감정, 장기기억, 욕망, 성욕 등을 관장한다. 후각은 기억을 자극하고 내밀한 경험을 불러오는 강력한 힘이 있다.
인간은 이런 후각을 이용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다. 바로 향수(香水)를 통해서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자신의 냄새를 가리거나 더 나은 향기를 지니기 위한 용도로 향수를 사용해 왔다. 마릴린 먼로가 “나는 자기 전 ‘샤넬 NO.5’를 입고 잔다”고 말했듯이 향수는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옷이나 악세사리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최근 젊은 층의 니치(niche) 향수 열풍은 향기 역시 나만의 취향·분위기를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임을 잘 보여준다.
향수는 알코올 등에 여러 가지 향료를 녹여 만든 액체 화장품이다. 어원인 라틴어 ‘per fumum’은 ‘연기를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약 5000년 전 고대인이 종교적 의식에서 신과 인간의 교감을 위한 매개체로 사용한 것이 최초의 향수다. 제사를 지낼 때 몸을 청결히 한 후 향기가 풍기는 나뭇가지를 태우거나 향이 나는 나뭇잎으로 즙을 내 몸에 발랐다고 한다.
근대적 의미의 향수가 나온 시기는 1370년경으로 지금의 ‘오 드 트왈렛’(eau de toilette) 풍의 향수인 ‘헝가리 워터’가 발명됐다. 헝가리 워터는 헝가리 왕비 엘리자베스를 위해 만들어진 증류향수로 최초의 알코올 향수다. 알코올은 물이나 기름에 비해 방향물질을 용해시키기 적합한 물질이다. 19세기에 들어서는 화학 발전으로 향 추출 기술이 정교해지고 합성 향료가 발명되면서 화학적 방법으로 다양한 향수가 만들어지고 대중화됐다.
향수는 원액과 알코올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향수를 뿌렸을 때 공기 중 휘발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알코올을 따라 향료가 흩어지며 발향이 된다. 알코올에 대한 향수 원액의 비율을 부향률(賦香率)이라고 하며 향수의 지속력은 이에 영향을 받는다.
향수는 대개 원액 농도에 따른 지속 시간에 의해 구분된다. 오드퍼퓸(Eau de perfume)은 에탄올을 희석한 물에 25% 가량의 향료를 합성시킨 것으로 5~6 시간 정도 지속된다. 오드트왈렛(eau de toilette)은 가장 대중적인 농도로 5%의 향료가 합성됐으며 3~5시간 정도 지속된다. 오드콜로뉴(eau de cologne)는 가장 연한 축에 속해 부담없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향료는 약 3%가 들어있고 지속력은 매우 짧은 편이다.
오(Eau)는 물(水, water)을 의미하며 트왈렛은 영어 발음으로 ‘토일렛’이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장미향 계열의 향수는 인돌(indole)과 스카톨(Skatole) 성분 또는 이 핵을 가진 물질이다. skato는 그리스 어원으로 똥(dung)이다. 이들 질소유기화합물이 메르캅탄(R-S-H) 및 황화수소 등과 겹치면 지독한 대변 냄새를 형성한다. 대변 냄새는 인돌과 스카톨의 농도가 높으면서 다른 황화합물이 겹쳐서 역겹다. 반면 향수는 인돌과 스카톨이 낮은 농도로 배합돼 있다.
분사된 향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는 향이 달라진다. 때문에 어떤 향수의 향을 설명할 때 특정 향이라고 단정짓지 않고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로 각각의 향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향수의 노트(Note)는 음악에서 차용한 용어다. 음악에서는 ‘음’에 해당하고 향수에서는 이를 ‘향조’라고 표현한다. 향에 대한 후각적인 인상 혹은 향이 갖는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향수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 순서로 향이 퍼지며 조화로운 향기를 완성한다. 각각의 노트는 이같은 향수 증발 과정과 발향 순서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만들어진다.
탑노트는 뚜껑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첫 향을 말한다. 향에 대한 첫 인상을 형성하므로 향수의 판매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탑노트는 가장 휘발도가 높으며 가볍고 신선한 향료들도 구성돼 있다. 민트(mint), 라벤더(lavender), 고수(coriander) 향이 대표적이다.
미들노트는 중간 단계의 휘발도를 갖는 향료로 구성되며 조향사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컨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때문에 조향사의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해서 ‘소울 노트(Soul Note)’, 향수의 심장부라는 의미에서 ‘하트 노트(Heart Note)’라고도 불린다. 미들노트에서 주로 쓰이는 향료는 샌달우드(sandalwood, 백단향, 白檀香), 자스민(jasmine) 등이다.
베이스노트는 가장 마지막에 남는 향기로 향수가 가진 본래의 향취다. 미들노트와 함께 향수의 메인 향기가 된다. 향수를 뿌리고 30분 정도 지나야 나타나며 대개 풍부하고 깊은 향을 낸다. 호박(amber), 사향(musk) 등이 많이 쓰인다.
향수의 원료가 되는 향료는 천연향료·합성향료로 구분된다. 향수의 재료는 본래 자연에서 채취했다. 크게 식물성과 동물성으로 나뉜다. 최근엔 합성향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수천 송이 꽃을 녹여 만든 천연 꽃 원액은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고, 동물보호협회의 압력으로 동물성 향료를 얻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나의 천연향료는 다양한 유향물질을 함유하는데 그 중 특정 성분이나 분획을 정제·추출한 것을 단리향료(單離香料)라고 부른다. 이러한 단리향료에 석유, 유지, 정유 등을 가해 화학적으로 재합성한 것이 합성향료다.
식물성 향료는 꽃, 과일, 풀, 씨앗, 나무껍질, 나무, 뿌리, 잎, 수지 등으로부터 여과·추출·증류 등의 방법으로 얻은 액체나 고체 등 방향성 물질을 말한다. 동물성 향료에는 사향, 영묘향, 해리향, 용연향 등이 있다. 동물성 향료는 채취량이 한정적이라 일반적인 식물성 향료에 비해 비싼 편이다. 따뜻하고 무거운 느낌을 주며 관능적이고 이국적인 향이 특징이다. 주로 베이스 노트에서 사용되며 천천히 증발하고 향을 더 오래 발산할 수 있게 돕는 고정제로도 사용된다.
동물향료의 대표격인 머스크(麝香, Musk)는 사향노루의 생식선에서 채취된다. 과거 왕을 유혹하기 위해 여성이 지니고 다녔던 향낭(향주머니)의 주재료가 바로 이 사향이었다. 그러나 1996년 체결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희귀동식물 보호규약’ 에 따라 사향노루는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분류돼 보호를 받고 있다. 이제 머스크를 채취해 거래하는 것은 금지됐으며 머스크향은 모두 합성 향료로 만들어진다.
영묘향(靈猫香, civet)은 사향고양이의 분비물에서 얻을 수 있다. 매우 불쾌한 냄새지만 희석해 사용하면 지속성이 강한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해리향(海貍香, castreum)은 비버의 향낭에서 채취된다. 레더(가죽)나 타바코 향을 만들 때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다. 예전에는 진통제 등에 사용되기도 했다.
용연향(龍涎香, ambergris)은 고급 향수에 쓰이는 값비싼 재료다. 향유고래의 창자 속에 생기는 이물(異物)로 향유고래가 먹은 먹이 중에서 소화되지 않은 부분이 돌처럼 모여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고래의 몸에서 배출돼 바다 위를 떠다니거나 해안가로 밀려온 게 발견돼 용연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선한 상태의 용연향은 부드러운 질감과 검은 색상을 띠며 악취가 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바다 위를 떠다니며 햇빛과 소금기에 노출되면 딱딱해지면서 검은색이 점차 연해지고 좋은 향이 나 고급 향수의 재료가 된다. 바다 위에 오래 떠다닐수록 향이 좋고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며 ‘바다의 로또’로 불릴 만큼 비싸게 팔린다.
향수의 향기는 체온이 높고 맥박이 뛰는 곳일수록 잘 퍼진다. 손목 또는 맥박이 뛰는 목 부분에 향수를 직접 뿌리면 향이 잘 퍼진다. 몸이나 옷에 뿌리면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피부로부터 발산되는 체온 또는 체취와 함께 섞여서 향기가 난다. 향수를 피부에 직접 뿌렸을 때는 직사광선에 닿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직사광선을 받으면 피부염 또는 색소침착을 일으켜 기미가 생길 수 있다. 향수병도 직사광선에 직접 닿으면 변색될 수 있으므로 서랍이나 어두운 곳에 보관한다. 또 향수를 뿌릴 때 병 입구가 피부에 직접 닿으면 향수가 변질될 우려가 있으므로 주의한다.
김신혜 기자 ksh@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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