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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의 유서 깊은 역사터 ‘통영’ … 명불허전 ‘소매물도’
입력일 2019-09-16 16:31:27 l 수정일 2019-09-16 17:46:59
세병관·충렬사·한산도 충무공 기리는 3대 명소 … 등대섬이 아련하다

통영(統營)은 이름 그 자체로 알 수 있듯 유서 깊은 군사도시다. 조선시대 충청·전라·경상의 삼도수군을 통할했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줄임말이다. 통제영이 설치되기 전에는 두룡포라고 불렸다. 1955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애국정신을 고양하고자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됐다가 1995년 다시 통영군과 합쳐져 통영시가 됐다.

통영을 들른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1990년대 후반 한산도에 들렀고, 4년 전 여름엔 세병관을 둘러봤고 올 여름엔 드디어 충렬사를 참배했다.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3대 포인트를 한번에 다 가기란 이렇듯 힘들었다. 시간도 쫓기지만 동행자들이 하나만 보면 됐지 뭘 그렇게 훑고 다니냐는 핀잔을 준 탓이기도 하다.

충무공 영정을 모셔놓은 충무사(忠武祠). 통영시청 제공 ©헬스오
한산도는 한산대첩의 학익진이 펼쳐진 곳이다. 한산도의 충무사(忠武祠)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이다. 제승당(制勝堂)은 이순신 장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1976년 10월 중건한 것으로 충무공의 전적을 그린 다섯 폭의 벽화가 있다. 수루(戍樓)는 적의 동정을 관측하는 망루로 충무공이 ‘어디서 일성호 가는 소리가 남의 애를 끓나니…’ 라고 읊조린 ‘진중시’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진중시’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한산정은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곳이며 표적과의 거리는 145m이다. 이순신 장관은 왜란을 맞아 장계를 올려 이 곳에서 무과시험을 치러 100여명이 급제하게 했다. 평민과 노비 출신이 있어 조정에서 논란이 일었으나 충무공은 극구 이를 관철시켰다. 

조선시대의 해군본부 역할을 했던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산 ‘세병관’ ©헬스오
삼도수군통제영(현재의 해군본부)은 임진왜란으로 왜구가 전 국토를 유린했던 1593년(선조 26년) 지금의 한산도에 세워졌다. 초대 통제사는 이순신 장군이었다. 통영시 관내인 지금의 위치에 통제영을 이동시킨 것은 1603년(선조 36년)이다. 병참 조달이나 병력 동원에는 여수(전라좌수영)가 통영(경상우수영)보다 적격이었지만 정여립의 난으로 호남인을 불신하면서 삼도수군통제영을 통영에 뒀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일본에 더 가까운 통영이 적지여서 낙점됐을 거라고 믿고 싶다. 6대 통제사였던 이경준이 터를 닦고 2년 뒤인 1605년(선조 38년)에 세병관(洗兵館) 등 건물을 세웠다.

통제영 본영의 중심건물은 세병관이다. 국보 305호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목조 건축물 중 바닥 면적(175평, 약 578㎡)이 가장 넓다. 세병이란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글에서 인용한 것으로 ‘은하수를 길어다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평화를 기원하고 동시에 전쟁에 대비한다는 의미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로 단층 팔작집이다. 건물 네 면이 개방돼 있고 우물마루에 연등천정과 단청이 어우러져 있다. 50개의 민흘림 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있다. 과거 지방관아 건물 중 최고 위치를 차지했다. 세병관은 여수의 진남관(鎭南館), 서울의 경회루(慶會樓)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대형 목조건물로 꼽힌다.

통제영에 설치된 공방에서는 관급 장인들이 각종 군장비와 진상품을 제작했다. 공방 운영이 가장 활발했던 18세기 후반에는 한양을 제외한 지방 공방 중 장인수가 가장 많았다.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도 최상급이어서 갓, 자개, 소반, 부채 등 각종 공예품은 전국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공방은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될 때까지 운영됐다.

충무공을 기리는 조선시대 국가 공인 사당인 충렬사(忠烈祠). 통영시청 제공 ©헬스오
충렬사(忠烈祠)는 1606년(선조 39년) 제7대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왕명으로 세웠으며, 1663년(현종 4년) 사액(賜額)됐다.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 통제사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다. 충무공 생전에 장군을 의심하고 경계했던 선조였지만 그를 기리는 민심이나 군심은 거스를 수 없었던지, 또는 애증이 교차하되 진정 애국충절에 감사했는지 통영에 국가공인 사당을 세웠다.

현지 가이드는 “전국에 20개가 넘는 충무공 사당이 존재한다”며 “국가 지정 사당으로 가장 정통성을 갖는 게 충렬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일제시대에 일본 관헌들이 전국의 충무공 사당을 훼철하였으나 충무공을 마음 속으로 경외하는 일본 해군 수뇌부들이 일본 경찰이나 행정관이 충렬사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막아내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무공을 애국애족의 표상으로 숭모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통영의 충렬사가 가장 정통성을 지녔다고 인식하면서도 1년에 한두번 참배하기엔 서울에서 이동거리가 너무 길고 당시 교통망이 미숙한 데다가 헬리콥터마저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아 부득이 지금의 아산 현충사를 주된 사당으로 삼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기자가 알기로는 3대 사당은 충렬사, 현충사 외에 여수의 충민사(忠愍祠)가 있다. 충민사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3년 뒤인 1601년(선조 34년) 왕명으로 우의정 이항복(李恒福)이 현지를 시찰하고 통제사 이시언(李時言)의 주관 아래 건립됐다. 충렬사보다 먼저 사액(賜額)된 충무공 관련 사액사당 제1호다. 여기엔 전라좌수사 의민공(毅愍公) 이억기(李億祺)가 배향됐다. 1870년(고종 7년) 서원철폐 당시 훼철되었다가 1873년 중수됐다. 다시 일제강점기에 다시 철폐됐다가 1947년 지방유림이 원위치에 재건했다.

아산 현충사(顯忠祠)는 이순신 장군이 8세부터 무과에 급제하던 32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순신 후손이 살던 종가도 이곳에 있다. 1704년(숙종 30년)에 고장 유생들이 사당의 건립을 위한 상소를 올려 1706년(숙종 32년) 조정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세워졌다. 이듬해인 1707년(숙종 33년)에 숙종이 친필액자를 하사했다. 그 뒤 흥선대원군과 일제에 의해 훼철됐다가 1932년 이충무공유적보존회와 동아일보사 중심으로 전국민의 성금을 모아 다시 세웠다. 1966년 이후 대대적인 성역화사업으로 부지는 160배나 넓혀졌고 후손들의 종가까지 포함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 가문의 사당인데 국가가 관리해주는 성격이 짙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활약한 통영과 전라좌수사로서 수군의 수장이 되고 첫 인연을 맺은 여수는 서로 자기들이 충무공의 혼이 담긴 본류라고 주장한다. 여수시는 이순신 장군이 작전 계획을 세우고 군령을 내린 진남관 앞에 2012년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2011년에 이순신광장을 조성했다. 하지만 웅천지구의 택지개발 사업을 통해 기부채납 형태로 만든 웅천공원을 2018년 이순신공원으로 바꿔부르기로 한 것은 솔직히 뜬금 없다. 역사성이 없기 때문이다.

통영시는 정량동에 소재한 이순신공원은 2007년까지 한산대첩공원으로 부르다가 2008년께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 참고로 여수시 묘도와 광양시 금호동을 잇는 이순신 대교는 2013년에 완공됐다. 여수 돌산도와 구도심을 잇는 거북선대교는 2012년 6월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만들어졌다. 기존 돌산대교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었다. 

기사를 보니 창원시는 진해 대발령 정상부에 높이 100m에 달하는 초대형 이순신장군 동상을 세워 해양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7월말 발표했다. 일명 이순신타워를 200억원을 들여 2021년까지 조성한다는 방안이다. 이에 질세라 통영시는 지난 10일 동호동  남망산조각공원 상부에 사업비 300억원을 들여 2022년까지 이순신타워를 2022년까지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역사성도 없는 과시용 사업에 거액의 세원을 낭비하다니 한심할 일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활용하려는 마케팅이 점입가경이다. 역사성 결여에 실효성마저 없다면 즉각 접어두길 바랄 뿐이다.

소매물도와 그에 딸린 부속섬인 등대섬 ©헬스오
통영 주변에는 약 150여개의 섬이 있다. 이 중 소매물도는 모든 여행객이 꼽는 1순위다. 매물도의 부속섬인 소매물도는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엔 아까운 섬이다. 소매물도의 새끼섬인 등대섬까지 가려면 1박2일로 여유롭게 여행일정을 짜는 게 좋다. 등대섬은 과거 모 제과회사의 광고 촬영지로 알려지며 일명 ‘쿠크다스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장사도와 함께 행정구역상 통영에 속하지만 거제도 저구항에서 가는 게 가장 가깝다. 

저구항에서 출발해 장사도 가왕도 어유도를 지나 매물도(대매물도)의 당금항에 기착한다. 내리는 사람은 없고 어느 낚싯배에서 내린 사람이 유람선으로 갈아탄다. 다시 몇 분 항해하니 매물도 본항인데 들르지도 않고 곧장 소매물도로 향한다. 편도 뱃길 여행시간은 약 40분.  

소매물도는 면적 0.5㎢, 해안선 총연장이 3.8㎞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섬 정상인 망태봉의 해발고도는 157m에 불과하다. 하지만 발길 닿는 어디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 과거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여명을 이끌고 온 서불(서북으로도 불림)이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 ‘서불과차(徐市過此, 서불이 여기에 다녀감, 市를 저자시가 아닌 슬갑불이라 읽음)’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을 정도다. 

섬 정상에는 매물도관세역사관이 있다. 1987년 폐쇄한 감시초소 자리에 만든 기념관으로 당시 장비와 관련 기록, 사무실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이 곳을 지나 경사지대로 내려오면 등대섬에 이르는 열목개길에 도착한다. 하루 두 차례 간조 때만 길을 건널 수 있다. 이를 모르고 무작정 소매물도 가는 배에 올라탔으니 준비성 없는 내가 한심하다. 어쩐지 성수기인데 관광객이 드물더라니…. 소매물도에서는 낚시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통영 서호시장의 일번지할매김밥집의 푸짐한 해물라면과 충무김밥 ©헬스오
통영에서 외식을 두 번 했다. 첫날 늦은 점심에 들른 서호시장에선 해물라면과 충무김밥을 먹었다. 여러집이 다 잘하겠지만 일번지할매김밥을 찾아갔다. 1만5000원에 3인의 점심이 가성비 높게 해결됐다. 해물라면에는 라면스프는 안 들어가고 된장을 풀어 해물을 우려낸 육수와 건더기가 냄비를 꽉 채운다. 짭조름한 오징어무침, 새콤한 섞박지, 밋밋한 손가락김밥이 허기를 달래준다. 관광객 몇팀이 좁은 식당 안을 점령하니 현지인은 포장해서 가져간다. 운이 좋아 빈 시간에 식사할 수 있었다. 

중앙시장이 통영항 내항에 인접해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시장이라면 서호시장은 새벽장이 열리는 부지런한 시장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서호만 바다를 매립해서 조성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정시장이라 불렸고, 새터라는 지명을 따라 새터시장으로도 불렸다.

귀경하기 아쉬워 돌아오는 날 저녁에 찾은 중앙시장 물회집은 엉망이었다. 통영해물가란 물회집은 인터넷 홍보내용만 믿고 찾아갔더니 반찬만 이것저것 많았지 짜고 느끼해 결정적인 한방이 없어 실망이었다. 중앙시장 횟집은 회만 떠가면 상차림비 4000~5000원에 푸짐하게 차려준다. 하지만 여기서 약간만 벗어나도 양이 줄고 가격은 비싸 가성비가 떨어지니 다 같을 거라고 기대하면 만족도가 저하되기 마련이다.

이순신 장군의 승전은 명멸해가는 나라를 구한 구름속의 찬란한 빛줄기였다. 선조의 치졸한 의심과 충무공의 장렬한 죽음은 마냥 통영 바다가 아름답게만 보이진 않는다. 통영은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의 무대이기도 하고 친북 음악가 윤이상의 고향이기도 하다. 거제도와 남해도가 거대한 방파제처럼 보호하는 잔잔한 바다에 동백꽃 유자꽃은 곱게 피어 나그네에게 손짓한다. 생선과 해물 등 물산은 풍요하다. 거기에 얽혀진 김약국과 윤이상의 비운이 대조적이어서 통영의 풍광이 비장미 있게 느껴진다. 이순신 장군의 기상이 어려 있고 풍광이 아름다워 몇 번은 더 가고 싶은 곳, 그곳이 통영이다. 

정종호 기자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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