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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공화국’ 오명 쓴 한국 … ‘관음증’, 호기심 아닌 성도착증
입력일 2019-04-15 17:51:27 l 수정일 2019-04-19 19:03:13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 게이트’ 여파로 유명 가수의 ‘성관계 몰카’ 범죄가 드러나면서 한국사회는 다시 한번 ‘몰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인기아이돌 빅뱅의 멤버 승리, 유명 오디션프로그램 출신 가수 정준영, 밴드그룹 FT아일랜드의 최종훈 등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단톡방)에서 성관계 몰카 영상을 불법으로 유포 및 공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11건의 불법촬영 몰카영상을 유포한 정준영, 그와 함께 행동했던 클럽 버닝썬 직원 김 모씨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구속됐다. 불법 촬영물 1건과 음란물 4건을 유포한 FT아일랜드 전 멤버 최종훈, 음란 사진을 한 건씩 유포한 로이킴과 에디킴은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한 건의 불법 촬영물을 올린 승리는 성매매 알선, 횡령 등 다른 혐의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함께 송치될 방침이다.

최근 몇 년새 국내 몰카 범죄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4년 이후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4년 2905명에서 2017년 5437명으로 4년새 2배 가까이 늘었다. 하루 평균 17.7건의 몰카 범죄가 발생했으며, 전체 피의자 수는 1만6802명으로 집계됐다.

몰카에 이용하는 도구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처음엔 스마트폰 내장 카메라가 주로 사용됐지만 최근엔 초소형카메라를 구두 앞쪽이나 안경, 펜 등에 설치해 범죄에 이용한다.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몰카 범죄가 급증하는 것은 인터넷의 발달로 성적 흥분을 자극하는 동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스마트폰 등의 보급률이 높아지며 몰카를 찍기 수월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주관적인 만족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자기조절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몰카 범죄는 대부분 관음증(觀淫症, voyeurism, Peeping Tomism)에서 비롯된다. 관음증은 ‘절시증(竊視症,Scopophilia)’이라고도 불리는 ‘성적도착증(paraphilia)’의 하나로 나체 또는 성행위에 관련된 사람을 몰래 관찰하고 이와 관련된 행동과 환상에 사로잡히는 질환이다. 옷을 벗고 있거나 벗은 사람, 성행위 중인 사람을 몰래 관찰하는 행동을 보이며 이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심하면 반복적으로 강한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되며 보통 자위행위를 동반한다.

인터넷 등에 떠도는 연예계 속설들, 이른바 ‘증권가 지라시’도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길 원하는 대중적 관음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어 ‘ちらし’에서 따온 찌라시라는 용어는 사설 정보 문건을 뜻한다. 서울 여의도 등지에서 활동하는 각 기업체나 증권사 등의 정보 담당자들이 정·재계 외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출처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연예계 스캔들과 관련, 사실인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음란성 내용은 ‘받은 글’이란 제목으로 마치 사실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배포된다.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펴낸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Ⅳ-TR)에 따르면 옷을 벗거나 성행위 중인 타인을 눈치 채지 못하게 관찰하는 것에 대한 공상, 성적 충동, 성적 행동이 6개월 이상 지속될 때 관음증으로 진단한다. 이같은 증상이 사회적·직업적으로 중대한 장해를 초래하는 경우도 해당된다.

일찍 증상이 시작될수록, 행위가 잦을수록,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이 없을수록, 약물을 남용할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 반대로 정상적인 성관계 경험이 있고 자발적으로 치료를 원하는 경우 예후가 좋아진다.

먼저 정신과적 상담이나 검사로 치매나 반사회적 성격장애 같은 기타 정신질환과 구분한다. 이어 정신치료적 요법을 실시해 이상 성행동의 근원을 치료한다. 보통 인지행동요법이나 그룹치료를 실시한다. 김 교수는 “몰카 범죄 등을 저지른 관음증 환자는 ’단순히 혼자 즐기는 것일 뿐 범죄는 아니다’, ‘초소형카메라 등을 사용해 검거될 위험이 없다’ 등 왜곡된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인지요법은 피의자를 대상으로 범죄 상황을 설정한 뒤 경찰에 검거되거나, 이로 인해 직장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매우 부정적인 상황을 주입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몰카 범죄 피의자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연애 등 사회적 관계에서 심각한 상처를 받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회적인 공감능력을 키워주고 정상적인 대인관계 및 사회적관계를 유지 및 형성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
증상이 심각한 경우엔 인지행동요법 등 행동·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약물치료엔 선택적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등을 사용한다.

김 교수는 “현재 몰카를 포함한 성범죄자들은 벌금이나 징역형 등에 그칠 때가 많다”며 “법적 처벌을 강화하되 근본 원인인 그릇된 성의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선친국처럼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음증이 단순히 개인의 성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사회구성원에게 인식시키고 청소년기부터 건전한 성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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