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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맛은 가라, 알고 마시면 더 짜릿한 ‘수제맥주’ A to Z
입력일 2020-01-07 17:23:02 l 수정일 2020-01-16 11:49:17
소규모 양조장서 탄생하는 다품종·소량생산 맥주 … 2020년 종량제 주세법 시행으로 더욱 활기 예상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수제맥주는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또는 하우스 맥주로 불리며 맥주 제조자의 개성과 제조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강점을 가진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말했다. “책은 고통을 주지만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영원한 것은 맥주뿐”이라고. 보리를 가공한 맥아를 발효시켜 홉(hop)이라는 향신료를 첨가해 맛을 낸 술, 맥주는 신석기시대에 맥주 항아리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올 만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효주이다. 


국내 맥주사랑도 대단하다. 국내 맥주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으로 5조원을 넘어 전체 주류 시장 규모인 8조원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치킨과도 찰떡궁합으로 일상에서 치맥(치킨+맥주)하다’라는 표현이 흔히 쓰일 정도다.


2020년 맥주업계엔 52년 만에 큰 변화가 생겼다. 새해 첫날부터 맥주에 부과되는 세금체계가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종가세란 제조원가나 수입가 등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종량세는 용량과 알코올 농도 등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체제다. 이에 따라 맥주는 기존 제품 대비 주로 용량의 영향을 받아, 소주는 도수의 영향을 받아 비례적으로 새롭게 출고가가 정해지게 된다.


이런 주세 체계 변화로 업계는 특히 수제맥주 시장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제맥주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원가가 높아 주세도 많이 냈지만, 원가에 상관없이 리터당 일괄적으로 세금이 부여되는 종량세로 전환됨에 따라 가격을 인하할 여지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재료 가격이 높던 수제맥주의 세금 부담이 최대 3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경쟁력이 강해지면서 고품질의 다양한 수제맥주가 생산되면서 전체 맥주 시장의 1% 안팎에 불과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메이저 기업에서 만드는 맥주와 달리 주로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드는 수제맥주는 다양한 개성을 품고 있어 차별화된 맛을 접할 수 있다. 수제맥주 시장의 확대는 기존 맥주의 천편일률적인 맛에 질린 맥덕(맥주덕후)에게도 무척 설레는 소식이다.


소규모 양조장서 탄생하는 맥주 … 가치소비 중시하는 트렌드에 딱!

젊은층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취향을 반영한 가치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수제맥주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자체 개발해 만든 맥주를 뜻한다.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또는 하우스 맥주로 불리며 과일향이 나고 홉의 쓴맛이 짙게 배어 나오는 등 각기 독특한 풍미를 지녔다. 맥주 제조자의 개성과 제조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국내에선 대형 제조사가 주로 제조하는 라거(Larger) 맥주와 비교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국내 맥주 시장은 상온 유통이 용이하며 대중적인 맛을 가진 라거 위주로 형성돼 왔다. 맥주는 크게 라거와 에일(Ale)로 대별된다. 주원료인 효모종에 따라 종류가 나뉘며 보통 라거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하면발효로, 에일은 높은 온도에서 빠르게 상면발효해 만든다. 친숙한 ‘카스’, ‘하이트’, ‘테라’ 등 국산맥주는 모두 라거인데 굳이 따지자면 밝은 금색의 ‘페일라거’에 속한다.


맥주 시장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하며 맛의 개성을 추구하는 수제맥주 생산자들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라거 계열로 상징되는 대량생산 맥주와는 달리 수제맥주 브루어리(Brewery)들은 라거에 비해 생산 기간이 짧고 다양한 맛을 연출할 수 있는 에일 위주로 시장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밖에 수제맥주는 IPA(India Pale Ale), 스타우트(Stout)  등 다양한 종류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다.


맥아를 빻아 맥즙을 만들고 홉을 넣어 끓일 때 홉 넣는 시간과 종류에 따라 풍미가 달라진다. 수제맥주는 맥아와 홉을 다양한 비율로 사용하고, 과일 등을 첨가해 독특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맥주 베이스를 만들어 냉장한 후 바이젠(Weizen·밀맥주), 에일 등 맥주 스타일에 따라 다른 효모를 넣는다.


수제맥주(craft beer)라는 단어는 1970년대 말 미국에서 탄생했다. 1913년에 제정된 금주령은 1933년에 폐지됐지만 미국이 주 연방국가인 탓에 1966년에야 비로소 전국적으로 해제됐다. 이를 계기로 소규모 양조장 창업이 활발해졌고 미국양조협회(American Brewers Association, ABA)가 소규모 양조장이 소량 생산하는 수제 로컬 맥주를 뜻하는 용어로 크래프트 비어란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양조협회가 정한 크래프트 비어(수제맥주)의 조건 3가지에 따르면 크래프트 비어는 소규모(small)이자 독립적(independent)이며 전통적(traditional)인 방식으로 제조돼야 한다. 소규모라 함은 연간 생산량이 600만배럴(9만5340리터) 이하인 것을 말한다. 또 경영상 독립자본을 원칙으로 하며 투자를 받더라도 외부자본 비율이 25% 미만이어야 한다.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력 맥주가 올몰트(100% 보리맥주) 등 전통적 방식의 맥주여야 한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라거와는 다른 독창적이면서도 맥주다운 맥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바야흐로 수제맥주 전성시대 … 개발·유통·투자 활발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100여 곳에서 수제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2017년 433억 원에서 2018년 633억원 규모로 성장, 연평균 41% 성장 중이다. 2019년엔 약 900억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주세법 개정으로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가 도입되면서 영업장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팔 수 있는 브루펍(brew pub)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0년 초반에는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과 홍대 근처 몇몇 펍에서 자체적으로 맥주를 양조해 판매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펍과 브루어리(양조장)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븐브로이는 하이트맥주(옛 조선맥주)와 오비맥주(옛 동양맥주)가 일제시대인 1933년, 1934년에 각각 설립된 이후 77년 만에 설립된 2011년에 설립된 국내 세번째 맥주회사로 대한민국 정부 출범 후 첫 맥주 제조허가를 받았다.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초원리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으며 수제맥주로 ‘한강’, ‘강서’, ‘전라’, ‘달서’ 등을 내놓고 있다.

소규모 양조장의 상업화가 본격화된 것은 2014년 주세법 개정 이후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제조한 맥주를 다른 맥주전문점, 술집 등으로 외부 유통이 허용되며 대기업·중소수입사·개인양조장·프랜차이즈 등이 수제맥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2017년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으로 소규모 맥주 제조업자들이 생산한 제품도 소매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전국에 산재한 수제맥주 업체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2018년 4월부터는 소규모 양조장이 식품접객업 영업허가(맥주 주점)를 갖지 않아도 외부 유통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처럼 수제맥주 인기가 높아지고 관련 규제가 풀리면서 개발·유통·투자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수제맥주 기업에 대한 투자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 수제맥주를 이끌던 브루어리들이 잇달아 대기업에 인수됐다. 세계 최대 맥주 회사 AB인베브(Inbev)는 2011년 미국 시카고의 대표적 양조장인 구스아일랜드(Goose Island)를 인수한 데 이어 2015년 로스앤젤레스 지역 내 최대 생산 규모를 가진 골든로드브루잉(Golden Road Brewing) 등 5개 기업을 인수했다. 미국에는 400개가 넘는 수제맥주 양조장이 있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이 직접 브루펍을 인수하거나 운영하기 시작했다. 신세계푸드의 ‘데블스도어’, 양현석 PD가 창업한 YG푸드의 ‘케이펍’이 대표적이다. 진주햄은 2015년에 국내 1세대 수제맥주 제조사인 ‘카브루(Kabrew)’를 인수했다. 더부스·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플래티넘맥주 등도 벤처캐피털을 통해 수십억원을 투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패션 전문기업 LF는 2017년 주류 수입사 ‘인덜지(INDULGE)’의 지분을 사들이기도 했다. 인덜지는 프리미엄 수제맥주 브랜드 ‘문베어브루잉’을 론칭하고 ‘금강산 골드에일’, ‘한라산 위트’, ‘백두산’ 등을 판매 중이다.


AB인베브의 100% 자회사인 오비맥주의 수제맥주 자회사인 ZX벤처스는 2018년 4월 핸드앤몰트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핸드앤몰트가 생산, 취급하는 맥주와 음주 콘셉트를 국내에 확산시키고 동남아 등에도 팔겠다는 계획이다.


제주 위트 에일·문경 오미자 에일 … 지역 특산물로 탄생한 색다른 맛

이같은 활발한 움직임에 한국은 세계 수제맥주 업계가 주목하는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30년 역사의 뉴욕 판매 1위 글로벌 수제맥주 제조사 ‘브루클린 브루어리(Brooklyn Brewery)’의 아시아 첫 자매 회사도 생겼다. 제주 한림읍에 양조장을 보유한 ‘제주맥주’다.


제주맥주에서 첫 번째로 출시한 ‘제주 위트 에일’의 레시피는 전세계 셰프의 오스카상인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James Beard Award)를 맥주업계 최초로 수상한 브루마스터(brew master) 개릿 올리버(Garrett Oliver)가 개발해 관심을 모았다. 레시피 개발 단계부터 제주 토속 음식과의 조화를 고려했다. 제주 감귤피를 사용해 제주의 색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제주맥주는 수제맥주로는 이례적으로 전국 주요 대형마트 입점률 90% 이상을 달성했다. 현재 백년초 등 제주 원료를 사용한 에일류부터 위스키 배럴 숙성 맥주, 스타우트 맥주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맥주 양조 과정을 볼 수 있다.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특별한 레시피로 수제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리가 전국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2016년 창업한 경북 문경의 ‘가나다라브루어리’는 특산물인 오미자와 사과를 활용하고 있다. ‘점촌IP’, ‘문경새재 페일에일’, ‘오미자 에일’, ‘사과 한잔’ 등 독자 기술로 생산한 수제맥주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급성장 중이다. 전남 담양군의 ‘담주브로이’는 담양 대나무를 이용한 수제 맥주 ‘밤부 바이젠’, ‘밤부 둔켈’과 안주를 만든다. 충북 음성군의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는 각 지역의 정서를 반영해 수제맥주 ‘광화문’, ‘서빙고’, ‘해운대’ ‘여수’ ‘평창’ ‘동빙고’ ‘서빙고’ 등을 생산하고 있다. 푸른 해변이 그려진 해운대는 파인애플 향이 살아있는 여름 맥주, 하얀 설산과 옥수수를 품은 평창은 겨울 맥주다. 밤바다가 그려진 여수는 전라도산 보리를 사용했다. 동빙고와 서빙고는 알코올 함량이 8.5%로 도수가 높은 편이다. 


쌀의 무한한 변신, 입맛 사로잡는 쌀맥주 등장

수제맥주 성장세에 힘입어 국내 쌀 품종을 사용한 쌀맥주가 출시되고 있다.  쌀 고유의 향을 더한 쌀맥주는 달큰쌉싸름한 맛과 부드러운 목넘김이 장점이다. 쌀맥주의 원료로 사용되는 기능성 쌀 품종은 ‘설갱’, ‘한가루’ 등 연질미와 ‘도담쌀’, ‘큰품’, ‘흑진주’ 등이 있다.


국내 수제맥주업체 바네하임의 ‘도담도담’은 2019년 세계 3대 맥주대회 중 하나인 호주국제맥주대회(AIBA)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도담도담은 맥주의 주원료인 외국산 맥아(보리) 대신 국산 도담쌀을 30% 넣어 만든 수제 쌀맥주다. 쌀의 당화를 돕는 액화 과정을 추가해 쌀 고유의 향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으며 맥주 본래의 맛도 살렸다는 평이다.


국순당은 2002년부터 농촌진흥청과 양조 전용쌀 설갱미를 공동연구해 제품화했다. 국산 쌀품종 ‘설갱’ 40%와 국산 효모까지 넣어 만든 ‘KSDB(Korean Style Draft Beer)’는 저온숙성으로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고, 맥아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쌀의 풍미와 깔끔함을 자랑한다. 또 수제맥주업체 버드나무가 설갱을 넣어 개발한 ‘미노리세션’도 강릉 일대에서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현재 국내 맥주 제조에 사용되는 맥아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산 맥아가 품질이 떨어져서라기보다는 가공시설을 세우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과 이들 시설이 차지하는 공간 때문에 중국, 호주, 영국에서 주로 수입한다. 이밖에 벨기에, 캐나다, 핀란드, 독일 등에서도 수입한다. 원료 맥아를 맥주 양조에 좋게 가공하는 것을 재맥공정이라고 하는데 국내서는 이를 외국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쌀맥주 비중이 늘면 수입 맥아를 국산 쌀로 대체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바네하임의 경우 현재 전북 익산에서 도담쌀 3t(1㏊)을 계약재배하고 있고, 버드나무 역시 강원 강릉 농가로부터 설갱 3t을 공급받고 있다. 쌀맥주 생산 및 소비가 국내산 쌀 소비 증대로 이어진다면 농가소득 확대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신혜 기자 ksh@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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